앞의 본문에 예수님께서 명절에 드러내지 않고 유대로 가셨지만, 명절 중간에 이르러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셔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배우지 아니하였음에도 글을 아는 것에 놀랐지만, 예수님은 내 교훈은 내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교훈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 교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말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24절 말씀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안식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안식일에도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고, 또 예수님 자신도 안식일에 사람을 온전케 하신 일을 비교하여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범하여 불의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예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신 것도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이었음에도 유대인들은 이것을 구분하여 노여워하였다고 말씀하시며,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말씀하신다.
드러나는 행위와 목적은 두 가지 행위 모두 안식일을 똑같이 범하는 일이고, 또 목적은 율법을 지키며 사람을 위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노여워한 이유는 그 행위의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 행위가 과연 율법을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율법에 기록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인지 봐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예배, 큐티 등의 종교적인 행위들이 정말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것들을 행함으로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인지 판단하라고 말씀하신다.
예배 가운데, 그리고 말씀을 읽고 큐티하는 가운데 나의 죄가 드러나고, 깨달아지고, 그것으로 인해 나의 마음이 깨뜨려지며 하나님 앞에 분수령적인 회개가 일어나는지, 아니면 여전히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은 죄악으로 달려가며 죄 가운데 머물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드러나는 행위, 즉 외모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공의로 옳은 판단을 해야 한다. 내 마음이 어떠한지, 그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내 삶에 말씀이 역사하시는지 아니면 말씀이 숙제와 같이 그저 하루 하루 채워나가기만 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말씀이 역사하시도록 내 삶을 내어드릴때, 나를 보내신이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 죄를 회개하지 않은채 행위로만 율법을 지키면, 그것은 자기의 영광만 구하는 일이고, 결국 불의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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